본문 바로가기
삽질하는 힘을 키우는 중입니다(책리뷰)

<산책의 언어> 우숙영, 목수책방 : 떠나가는 가을에게

by rallalawoman 2024. 11. 21.
반응형

https://www.yes24.com/Product/Goods/112012018

산책의 언어(리커버 특별판) - 예스24

자연에서 바라보고 경험하고 느꼈던 것들을 몇 개의 단어로밖에 설명하고 묘사할 수 없는 사람들을 위한 책이다. ‘사전에세이’ 형식의 이 책은 우리 주변에 늘 존재했으나 잘 몰랐던 구체적

www.yes24.com

산책의 언어, 우숙영, 목수책방

11월을 마지막 한 주 남겨놓고 있는 시점, 한국에는 울긋불긋 아름다운 단풍들이 가득할 것을 생각하면 그리움이 목까지 차오른다.
내가 사는 요르단에도 사계절이 모두 있지만, 한국의 아름다운 가을이 이곳과 가장 많이 다른 모습이기에 더 많이 떠오르고 상상하며 그리워하게 된다.

내가 가장 사랑하는 에세이 <산책의 언어>에는 자연에 관한 글들이 가득하다. 이 글들 속에는 과학적 관점에서 서술하는 이야기와 따뜻하고, 인간적인 관점에서 서술한 이야기가 공존한다.
몰랐던 자연에 대한 언어들이 사전식으로 설명되어 있는 독특한 구성의 자연 에세이이다.
내가 느끼고 기억하는 자연의 한 부분과 다른 이가 과학적 서술과 그의 경험에 비추어 쓴 서정적인 묘사를 비교하면서 읽는 재미도 쏠쏠하다.
울컥했다가 새로운 사실에 감탄했다가, 또다시 고개를 끄덕이다가 미소를 짓게 되는 이 다정한 책을 많은 사람들이 읽게 된다면 우리가 보다 더 자연을 사랑할 수 있게 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p. 147  단풍은 나무와 나뭇잎이 선택한 선택의 결과물이다.
     가을이 무르익고 겨울이 어슬렁거리기 시작하면 동물들은 겨울을 준비한다. 따뜻한 곳으로 이동하거나, 겨울 양식을 비축하거나, 겨울잠을 청한다.
하지만 갈잎나무는 추운 겨울을 버티기 위해 조금 다른 선택을 한다. 나뭇잎으로 떨어트리기로 한다. 어린잎이 움트는 봄부터 성장하는 여름까지
나무는 최선을 다해 나뭇잎을 보살폈다. 하지만 여름이 물러가고 선선한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나무는 나뭇잎에 공급하던 영양분을 거두어들인다.
잎자루에 떨켜를 만들어 나뭇잎을 떨어트릴 준비를 한다. 버리는 일이 쉬울 리 없다. 봄과 여름은 힘을 다해 키웠던 잎이다.
흔적 없는 이별이 있을 리 없다. 나뭇잎을 보낸 자리에는 잎자국이 남는다.

            <산책의 언어-담담한 아름다움> 중에서



p. 287. 길지 않은 삶이었지만 선택은 언제나 쉽지 않았다. 많은 것이 바뀔 수 있는 선택일수록 그랬다. 몇 번의 선택이 자나 간 후에야 선택이 어려웠던 이유를 알았다.
새로운 것을 얻기 위해서는 언제나 익숙하고 편안한 것을 버려야 했다. 버리지 않고 더 가지겠다는 마음 때문에 선택의 시간이 괴로웠다.
좋은 선택은 잘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잘 떠나보내고 잘 버리는 것이었다.

   <산책의 언어- 선택하는 가을> 중에서

담담하고, 의연한 듯한 문체 속에 여리고 다정한 시선이 가득하다. 유유히 흐르는 문장 속에서 우리말의 아름다운을 배울 수 있는 것은 더 설레는 일이다.
글 속에서 자연을 발견하게 되고, 반짝이는 말을 발견하게 되고, 우리의 삶을 발견하게 된다.

팍팍한 일상에서 지쳐갈 때, <산책의 언어>는 휴식이 되어주고, 곁에서 자연을 읽어주는 다정한 목소리가 된다.
잊었던 아름다운 것들을 생각할 수 있게 해 준다.
짧은 글들로 이루어진 이 포근한 책은 휴식이 필요한 이에게, 도시의 생활이 지친 이들에게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