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삽질하는 힘을 키우는 중입니다(책리뷰)

산문집 <너무 보고플 땐 눈이 온다> 고명재 시인, 난다 출판사 : 사랑의 여러가지 이름

by rallalawoman 2024. 11.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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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보고플 땐 눈이 온다
사랑은 화려한 광휘가 아니라 일상의 빼곡한 쌀알 위에 있다.

<너무 보고플 땐 눈이 온다> 중에서

고명재 시인의 산문집 <너무 보고플 땐 눈이 온다>는 ‘사랑’이라는 이상한 리듬을 말하기 위한 시인의 무채색에 얽힌 백 가지 이야기라는 띠지를 가지고 있다.
표지도 회색빛의 무채색. 쓸쓸한 느낌을 주는데 이 안에 담긴 이야기들은 온통 하얗다 못해 눈이 부신 투명에 가까운 사랑이 가득하다.
시인의 어린 시절, 그가 사랑했던 사람들 그리고 시인의 시선이 멈춘 것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표지처럼 그립고 소중한 사람을 혹여나 깨질까, 혹여나 사라질까 조심조심 두 손위에 올려놓는 마음과 같다.


가끔 나는 능이버섯을 쳐다보다가 폭설처럼 울 때가 있다. 말린 능이든 갓 딴 능이든 상관없다.
검정과 흰빛이 골고루 섞인 능이버섯은, 능이로서 세상에 있을 뿐인데.

너는 능히 할 거야.
선하게 클 거야.
너는 오래 아름다움을 말하게 될 거야.

한때 나를 키우던 비구니가 어느 여름날, 땀에 젖은 앞머리를 쓸어주며 이렇게 말했다. 그리고 수십 년 시간이 흘러 어느 겨울날,
나는 정말 시인이 되어버렸다.
나는 그가 살던 사찰에 가서 불상 앞에 엎드려 엉엉 울었다.
스님 나 시인 됐어요.
선하게 쓸게요.
서늘한 대웅전 바닥에 이마를 대면서.
아주 오래 아름다움을 말하는 사람이 될게요.
능선처럼 강물처럼 그렇게 쓸게요.

p.57  ‘능이버섯’ 중에서

이런 마음을 받고 자란 사람은 사랑에 대해 말하지 아니할 수 없을 것이다.
능이버섯만 보아도 그 사랑이 생각나서 폭설처럼 우는 마음.
자식을 키우는 부모가 되니 이런 마음이 얼마나 진실한 사랑에서 우러나왔었는지 나는 분명 느낄 수 있었다.
‘너는 능히 할 거야’라는 말은 듣고 자란 시인님의 마음에는 얼마나 큰 사랑의 바구니가 담겨있을지, 긴 시간이 지나 더 깊어진 그리움과 사랑 끝에 알게 된
이 마음이 얼마나 벅차고 따뜻했을지. 나는 시인의 마음이 되기도 하고, 스님의 마음이 되기도 한다.


<너무 보고플 땐 눈이 온다> 고명재, 난다 출판사

<너무 보고플 땐 눈이 온다> 고명재, 난다 출판사

버짐, 검버섯... 듣기만 해도 가슴 한켠이 시린 단어들이다.
삶의 고됨을 느끼게 하는 언어이자 세월을 느끼게 하는 이 단어가 시인의 언어로 다시 태어난다.
‘검버섯도 꽃이다, 그래서 우린 그것을 핀다고 한다 ‘ ’ 버짐은 살에 피는 마음의 서리다 ‘
시인의 언어들은 우리 삶의 빛이 드리우지 않은 곳에 한 줄기의 가는 햇살을 끌어다 비추는 것만 같다.

메마른 우리의 삶에 물도 주고, 빛도 주고, 바람도 주어 작은 꽃을 피울 수 있게 한다.
슬프고 아렸던 단어들이 ’ 꽃‘으로 태어나고 ’ 서리‘로 새로 태어났다.

마음속 그리움이 문을 열고 나와 어린 시절의 장면들을 생생하게 떠올리게 하고, 세월이 흘러 지금 내가 어떤 모습이 되었는지를 또렷하게 보게 한다.
<너무 보고플 때 눈이 온다>는 연신 내 마음의 그리움을 두드려 폭포 같은 눈물을 흘리게 만든다.
내가 사랑으로 이루어진 존재라는 것을 잊지 말라고, 우리는 모두 사랑으로 자라난 존재라는 것을 이야기해 준다.



겨울이 온다. 사랑이 그리운 사람들에게, 혹은 지금 혼자 외로운 사람들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