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걸리버 여행기>는 우리나라에서만 동일한 이야기로 57개가 넘는 출판사에서 출간되어 있다.
걸리버 여행기를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사람을 찾기가 어려울 정도로 우리는 이 이야기를 어릴 때부터 아주 많이 접해왔다. 나 역시 그러하였다.
하지만, 걸리버 여행기가 소인국 이야기만 있는 것이 아니라, 거인국, 라퓨타, 후이늠 등 여러 나라를 여행한 이야기이며 이 이야기들 속에는 인간에 대한 풍자가 가득하다는 사실을 아는 이가 많지 않을 것이다.
총 4부로 이루어진 이 여행기는 저마다의 새로운 세계를 경험하는 걸리버의 발자취를 따라간다.
너무나 다른 문명과 사람들 그리고 제도와 환경을 지닌 각각의 나라에서 만나는 모든 인류들이 결국 조너선 스위프트가 인간에 대한 비판과 풍자를 표현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얼마나 신랄하게 비판하는지 얼굴이 화끈거리고 귀가 뜨거울 정도이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이야기의 한 부분을 소개하려고 한다.

제3부 10장에 나오는 영원히 사는 종족 스트럴드브럭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들은 보통 서른이 될 때까지 불사의 몸이 아닌 것처럼 행동합니다. 이후 그들은 점차 우울하고 낙담한 모습으로 변하고, 여든이 될 때까지 증상은 더 나빠집니다. 물론 이것은 그들이 직접 고백하여 알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한 세대에 두세 명 정도밖에 태어나지 않을 정도로 숫자가 너무 적어 일반적 결론을 도출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이 나라에서 아주 오래 살았다고 생각되는 나이인 여든이 되면 그들은 다른 여든 살 노인에게서 드러나는 우둔함과 결점을 전부 보여줄 뿐만 아니라, 절대 죽지 않는다는 끔찍한 전망 때문에 더 많은 결점을 보여줍니다. 그들은 독선적이고, 역정을 잘 내고, 탐욕스럽고, 심술궂고, 자만심이 강하고, 수다스러울 뿐만 아니라 남들과 친분을 쌓지도 못하고, 모든 자연적인 애정에 무관심합니다. - <걸리버 여행기>, 조너선 스위프트 | 이종인 옮김 - 밀리의 서재
스트럴드브럭은 자식과 손자를 빼면 그 누구도 사랑하지 못합니다. 그들에게 팽배한 감정은 부러움과 공연한 욕심입니다. 그들은 주로 젊은이의 부도덕한 쾌락과 노인의 자연스러운 죽음을 질투하는 것 같습니다. 젊은이를 볼 때마다 그들은 자신들이 그런 쾌락을 느낄 모든 가능성에서 차단당했음을 알게 됩니다. 또 그들은 장례식을 볼 때마다 다른 사람이 자신들은 결코 다다를 수 없는 안식의 항구로 떠난 데 대해 한탄하고 푸념합니다. - <걸리버 여행기>, 조너선 스위프트 | 이종인 옮김 - 밀리의 서재
인간은 영생을 꿈꾸는 동물이다. 십장생과 같은 동물 그림을 그리며 오래 살 수 있기를 희망하고, 새로운 의학 기술은 노화를 지연하는 기술들에 대하여 연구하고 있고, 더 나아가 우리는 미래 수명이 120세가 될 것이라는 이야기도 나오기 시작했다.
인간은 왜 영원을 꿈꾸고, 죽지 않는 삶을 바라는 가?
스트럴드브럭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때 그들은 80세가 될 때까지 우리의 삶의 모습과 동일하다가 그 이후부터 늙은 모습으로 영원을 산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우리는 오래 살기를 꿈꾸지만 그 모습이 스트럴드브럭과 같다면 정말로 오래 살고 싶을까? 우리의 수명연장에는 젊은 모습이 더 오래되기를 바라고 있는 것은 아닐까?
죽지 못하는 스트럴드브럭은 ‘죽음을 맞이한 사람을 볼 때마다 자신은 결코 다다를 수 없는 안식의 항구로 떠난 데 대해 한탄하고 푸념합니다’고 한다. 영원히 죽지 못하는 삶이란 과연 인간이 진정 원하는 삶인 것일까? 나는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다.
삶의 유한함이 있기에 우리는 매 순간이 소중하고 찬란한 것은 아닐까?
늘 끝이 있음을 알기에 지금 이 순간에 더 감사할 수 있는 것은 아닐까?
카르페디엠과 메멘토모리는 결국 같은 메시지를 전하려는 것을 아닐까?
지금, 이 삶에 충실하라는 메시지. 죽음을 기억하고 지금에 충실하라는 것이 이 이야기에서 내가 얻은 메시지였다.
<걸리버 여행기>는 여성을 비하하는 내용도 있고, 계급에 대한 인식과 노예에 대한 인식, 그리고 제국주의와 식민주의 인식이 저변에 깔려있어, 현대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불편한 점이 많은 소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500여년전에 살던 조너선 스위프트의 상상력은 실로 놀랍다. 지프리 스튜디오의 모티프가 되었던 ’라퓨타‘과 그 안에 과학중심의 세계에 대한 이야기, 가장 우월한 동물인 말이 가장 열등한 동물 야후(인간)를 지배하는 이야기등 기존의 이야기들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새롭고 흥미로운 상상들이 가득한 종합선물세트와 같은 이야기이다.
삶에 무료함을 느끼거나, 지금 있는 상황에 답답함을 느끼는 사람에게 이 책을 추천하고 싶다.
지금 내 삶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질문이 있고, 현실을 뛰어넘는 고난(?) 이 가득한 이야기를 읽다 보면 어느새, ’ 지금, 여기‘에 집중하고 감사할 수 있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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