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삽질하는 힘을 키우는 중입니다(책리뷰)

<이 지랄맞음이 쌓여 축제가 되겠지> 조승리 에세이, 달 출판사: 덤벼라 세상아!

by rallalawoman 2025. 1.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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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지랄맞음이 쌓여 축제가 되겠지
“엄마 죽을 때 같이 죽자고? 엄마나 죽어! 난 아직 창창히 더 살 거거든?
어디 물귀신처럼 물고 늘어지려고 해! 난 엄마 없어도 잘 살 거거든!”
이 지랄맞음이 쌓여 축제가 되겠지, 조승리, 달

오랜만에 읽는 에세이다. 김선우 작가님의 도도새가 눈에 들어왔다.
도도새는 깃발을 들고 무언가 이리저리 시도하고 궁리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병률 시인의 추천사 역시 손을 뻗게 만든다.
‘도대체 어떤 이야기이길래 이토록 화려한 라인업인가?’

첫 이야기부터 그녀는 천부적인 이야기꾼이며 천재적인 글솜씨를 가졌구나 감탄하게 만든다.
15살부터 시력을 잃기 시작한 조승리 작가의 인생이야기는 잔잔한 다큐멘터리와 같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그녀가 앞을 잘 보지 못한다고 해서 슬픈 이야기들로 손수건을 준비해야 한다고 생각하면 당황할 수 있다.
그녀의 이름처럼 인생승리 이야기.
당돌하고 씩씩하고 용감한 한 사람의 이야기가 명랑만화처럼 펼쳐진다.

읽는 내내 멋지다 감탄하게 만들다가 뼈 때리는 말로 주눅 들게 만들더니, 깊은 생각들은 나를 울게 만든다. 그리고 다시 찰싹! 따귀를 올려친다.



조승리라는 사람에게 흠뻑 빠지게 만드는 에세이다.

시력을 잃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후 그녀의 어머니는 방방곡곡 영험한 곳을 찾아다닌다. 그녀가 시력을 잃게 된다는 사실을 어떻게 해서든 막아보고 싶은 간절함이었을 것이다. 엄마는 그렇다. 자식의 일이라면 물불 가리지 않게 된다. 온갖 방법을 찾아다니며 애쓰던 엄마와 그년가 결국 방법을 찾지 못해 현실을 받아들이게 된다.
“엄마가 진짜 미안해! 엄마 죽을 때 우리 같이 죽자!”라고 말하는 엄마에게
“엄마 죽을 때 같이 죽자고? 엄마나 죽어! 난 아직 창창히 더 살 거거든? 어디 물귀신처럼 물고 늘어지려고 해! 난 엄마 없어도 잘 살 거거든!”이라고 답하는 그녀.



‘극복’이라는 말처럼 오만한 단어가 있을까? 장애를 극복하고, 가난을 극복하고, 불합리한 사회를 극복했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생각한다. 나는 영원히 내 장애를 극복하지 못할 거라고. 나는 단지 자주 내 장애를 잊고 산다. 잊어야지만 살 수가 있다. 그래서 누구보다 빨리 체념한다. 그것이 나를 지키는 방법이다. (에릭 사티가 내리던 타이베이 중에서)

“앞도 못 보면서 여길 힘들게 뭐 하러 왔누!”
보이지 않아도 보고 싶은 욕망은 있다.
들리지 않아도 듣고 싶은 소망이 있다.
걸을 수 없어도 뛰고 싶은 마음은 들 수 있다.
모든 이들은 행복하고 싶은 욕구가 있다.(에릭 사티가 내리던 타이베이 중에서)

“하나님이 왜 장애인을 이 땅에 만드셨는지 아시나요? 그건 여러분께 현실이 얼마나 행복한지! 깨닫게 해 드리려는 주님의 안배입니다. 저들을 바라보며 건강한 육신이 얼마나 축복인가를 아시길 바랍니다.”

  강단 아래 100여 명의 신도들은 모두 “아멘” 하고 대답했다. 얼굴이 붉게 상기된 것은 나뿐이었다. 나는 그날의 치욕을 잊지 못한다. 어느새 들이친 죄책감이 발목까지 고여 들었다. 입 속 남은 씁쓸함은 커피 탓이리라 생각하고 싶었다. (그녀가 핼러윈에 갔을까 중에서)



이처럼 타인의 삶을 함부로 평가하고 재단하는 이들을 마주하는 그녀의 삶에도 그녀는 결코 주눅 들거나 좌절하지 않는다.

“담아, 커져라! 내년에 관광 좀 가보자!”
그러면 여인이 응답한다.
“어여차! 기운 받았다.”
일요일 아침 나는 내게로 걸어오는 씩씩한 발걸음소리를 기다린다.(그녀가 온다 중에서)
“장애아를 낳으면 죄인이 돼야 하나요? 그게 사회적으로 지탄받아야 할 사실인가요? 그럼 저는요, 저는 죄의 근원인가요?”(이별 연주회 중에서)
나의 새로운 장래희망은 한 떨기의 꽃이다. 비극을 양분으로 가장 단단한 뿌리를 뻗고, 비바람에도 결코 휘어지지 않는 단단한 줄기를 하늘로 향해야지. 그리고 세상 가장 아름다운 향기를 품은 꽃송이가 되어 기뻐하는 이의 품에, 슬퍼하는 이의 가슴에 안겨 함께 흔들려야지.
(비극으로 끝날 줄 알았지 중에서)


그녀는 이렇게 단단한 자태로 낡은 생각과 말들을 응수한다.
여행을 다니고, 탱고를 배우고 안마사 일을 하면서 만난 이들과의 일화들 속에서 그녀가 삶을 대하는 마음이 얼마나 뜨거운지 열기가 느껴진다.  이 멋진 사람을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그녀의 이야기들은 시도도 하지 않고 못하는 이유에 대해 변명을 늘어놓게 되는 나 자신에게 찰싹찰싹 등짝을 후려치는 것만 같다.

그녀가 사람에게 얼마나 애정을 가지고 있는지, 그녀는 얼마나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지, 결국 그 사랑들이 그녀를 이토록 아름다운 삶을 이끌어가게 하고 있다는 사실을 엿보면서 결국 우리는 사람과 사랑만이 구원할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게 만든다.

이병률 시인이 ‘그녀의 훤칠한 글 앞에서 내가 바짝 졸았다는 사실’을 고백하는 이유를 비로소 나는 알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