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삽질하는 힘을 키우는 중입니다(책리뷰)

소설집 <깊이에의 강요> 파트리크 쥐스킨트, 열린책들 : 타인의 평가에 휘둘리지 말것

by rallalawoman 2024. 12.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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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에의 강요
나는 왜 깊이가 없을까?

깊이에의 강요, 파트리크 쥐스킨트, 열린책들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소설들을 사랑한다. 건조하고 시니컬한 그의 문제에는 구구절절 감정의 묘사가 없다.
날카롭게 그은 선을 보는 것과 같이 명료하고 세밀하며, 단선적이다.
그는 모든 문학상과 인터뷰를 거절하는 은둔의 작가이다. 그의 이러한 성향 때문에 그의 소설들은 더 신비롭고 특별하게 느껴지는 듯하다.

<깊이에의 강요>는 83페이지 분량의 작고 짧은 소설집이다.
이 작은 책은 가볍지 않은 이야기들이 꽉 들어차있다.

표제작 <깊이에의 강요>는 소묘를 뛰어나게 잘 그리는 젊은 화가가 초대 전시회에서 어느 평론가에게 “당신 작품은 재능이 있고 마음에 와닿지만, 아직 깊이가 부족하다”는 평을 듣는다.
젊은 화가는 ’ 깊이가 부족하다 ‘는 말의 의미를 골몰하다 말의 함정에 빠져 삶의 균형을 잃어가고 결국 ’ 깊이‘의 늪에 빠져 삶을 포기한다.
이후, 그녀에게 깊이가 부족하다고 했던 평론가는 “그녀의 초기 작품들에서 이미 충격적 분열이 나타나고 있지 않은가? 사명감을 위해 고집스럽게 조합하는 기교에서, 이리저리 비틀고 집요하게 파고듦과 동시에 지극히 감정적이고 분명 헛될 수밖에 없는 자기 자신에 대한 피조물의 반항을 읽을 수 있지 않은가? 숙명적인, 아니 무자비하다고 말하고 싶은 그 깊이에의 강요를?”

한 평론가의 주관적이고 친절하지 않은 평론이 젊은 화가의 비극적 삶의 시작이 되었음에 화가 나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하다.

누군가의 한마디가 칼이 되어 마음이 무너지고, 좌절을 해본 경험이 있는 가?
소설 속 평론가는 한 예술가에 대해 상반된 평가를 한다. 깊이가 부족한 예술가 vs 깊이에 대한 강요
평론가는 지적 허영심을 표출하는 인간일 뿐 인 것일까? 아니면 순간의 감정에 충실했을 뿐일까?
그에게 ‘깊이’라는 것은 무엇이었을까? 과연 그는 그 평가의 기준을 가지고 있긴 했을까?

객관적이지 못하고 충동적일 수 있는 개인의 평가는 타인에게 미치는 영향을 극단적인 결말로 표현된 이 소설은 분명 생각할 거리를 던진다.
‘깊이’를 이야기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깊이를 이야기하는 이는 과연 그 깊이를 가지고 있긴 한 것일까?
우리는 왜 깊이를 강요받아야 하는 것일까?

타인의 시선과 평가에 익숙한 우리는 젊은 예술가가 겪었을 혼란과 좌절감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젊은 예술가가 평론가의 말이나 평가에 휘둘리지 않고, 자신의 개성과 표현에 집중했더라면 어땠을까?
타인은 대중이라는 권력이 되어 개인을 잔인하게 재단하고, 마녀사냥을 하기도 한다.
현대 사회에서 일어나는 아주 흔한 모습들이다. 이러한 사례들은 우리를 더 타인의 평가에서 자유롭지 못하게 만든다.
자신의 삶이 타인의 시선과 평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사실은 우리를 더 작게 만든다.
반대로 나는 타인에게 함부로 평가하거나 깊이를 강요하고 있지는 않은가? 나의 말로 타인의 찌른 적은 없는가?

<우리는 여전히 삶을 사랑하는가?> 에리히 프롬의 책 중에 “오늘날에는 모두가 자기 자신을 착취한다. 모두가 자기 바깥의 목적을 위해 자신을 이용한다. 사물의 생산이라는 한 가지 전능한 목표만 존재할 뿐, 우리가 입으로만 신봉한다고 고백한 목표, 즉 완전한 인성 발달, 완전한 인간 탄생과 성장은 전혀 중요하지 않다. 결국 목적이 되어버린 수단, 사물의 생산만이 중요한 과정에서 우리는 우리 자신을 사물로 바꾼다. p.55


스스로를 사물로 만들지 않겠다는 다짐과 바깥의 목적을 위해 자신을 희생시키지 않겠다는 결심이 필요하다.
또한 사회는 개인을 수단으로 여기고 표준화에 맞춰 재단하는 일을 멈추고, 개인의 자유를 존중해주어야 한다.

‘나’라는 존재는 개인이 되기도 하고, 때로는 사회의 구성요소로서 집단이 되기도 한다.
이 두 정체성은 충돌하는 것이 아닌 양립하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양립하는 정체성은 인정하고, 타인에게 강요하고 함부로 평가하지 말 것, 개인으로서 자유를 휘둘리지 않아야 한다.
타인의 평가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면 우리는 스스로의 삶에 보다 더 집중하고, 자기 자신을 더 소중히 여길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