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삽질하는 힘을 키우는 중입니다(책리뷰)

소설 <빛이 이끄는 곳으로> 건축가 백희성, 북로망스 : 공간은 추억과 사랑으로 비로소 완성된다.

by rallalawoman 2025. 1.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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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이 이끄는 곳으로
모든 이들의 기억의 장소는 바로 집이었다.

빛이 이끄는 곳으로, 백희성, 북로망스


이 책은 프랑스에서 건축가로 활동 중인 백희성 작가의 실제 경험이 녹아 있는 소설이다.
그는 파리에서 아름다운 집을 볼 때마다 그 집의 우편함에 편지를 적어 넣었다
“당신의 집에 담긴 이야기를 듣고 싶은 한 건축가로부터.....”라고.
그렇게 수백 통을 남긴 그는 편지의 답장을 받은 곳들의 이야기를 듣게 된다.

이 소설은 뤼미에르라는 건축가가 파리의 시테섬에 한 낡은 주택을 만나면서 시작되는 이야기이다.

건축가라는 직업이 생계의 수단이 되어가는 현실에 지쳐가던 뤼미에르는 시테섬의 낡은 주택을 저렴한 가격에 내놓은 주인을 만나기 위해 스위스행 열차에 올라탄다.

그가 만난 집주인 피터왈처는 스위스에 한 요양병원에 머물고 있다. 그 요양병원은 오래된 수도원을 개조한 병원이었는데, 그 건축물에는 미스터리한 비밀이 숨겨져 있다.
뤼미에르는 이 요양병원을 곳곳을 살펴보면서, 건물에 대한 비밀을 찾아간다.



이 소설은 실제 건축가인 작가가 소설 전반에 건축물에 대한 디테일한 묘사와 건물과 자연 그중 빛의 섬세한 묘사가 매혹적으로 묘사된 소설이다.
건축가이기에 가능한 건물의 기능과 역할 그리고 미학적인 면과 건축물속에 살아가는 이들에 대한 이야기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책의 제목과 같이 ‘빛이 이끄는 곳으로‘ 독자들을 안내한다.

내가 좋아하던 것이 직업이 되면 어느 순간 우리는 좋아했다는 사실을 잊고 생계의 역할로 끌려가며 일에 대한 매너리즘에 빠지거나 도구로서의 직업으로 매몰되기도 한다.

이 소설은 그러한 우리에게 자신이 왜 그 일을 좋아하게 되었었는지의 처음 마음을 환기시켜 주며, 건축이 단순히 대상으로서의 존재가 아니라 그 안에 머물렀던 이들의 지문과도 같은 공간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해 준다.

같은 공간이어도 누가 사느냐, 어떤 이야기가 담긴 집이냐에 따라 공간을 완전히 다른 얼굴을 갖게 된다.
인간의 생존에 필수적 요소인 의식주.  
생존에 필수인 요소이자 인간에게 가장 큰 의미와 변주가 가장 많은 영역이기도 하다.

얼마 전 큰 화제를 몰았던, 넷플릭스의 ’ 흑백요리사‘에서는 음식에 대한 이야기이자 음식을 만드는 요리사들의 이야기였다. 이 프로그램이 내게 준 감동과 환희를 나는 아직도 생생히 기억한다. 요리사가 되겠다고 결심하던 순간들, 요리사가 되기 위해 노력한 시간들, 그리고 그들이 만든 음식에 담긴 열정과 의미들까지.

살기 위해 먹는 것일까? 잘 먹고살기 위해 살아가는 것일까?
’ 흑백 요리사‘와 ’ 빛이 이끄는 곳으로‘는 후자의 질문의 대답과 더 가깝다고 생각한다.

나는 한 명의 건축가이기 이전에 이 집을 거쳐 간 수십 명의 집주인들 중 한 명일 뿐이다. 나는 전 주인 프랑스와의 흔적과 역사를 간직해 주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나 또한 여기에 흔적을 남길 것이다. 그게 바로 집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집은 우리의 모든 것을 기억해 준다. 이제 나는 프랑스와 왈처의 감춰진 비밀을 찾는 사람이 아니라, 한 공간에서 그와 공감하고 이해하는 유대감을 가진 사람이 되어가고 있었다.”p.220
“건축가가 조금 부족한 공간을 만들면 그곳에 사는 사람이 나머지를 추억과 사랑으로 채운다는 겁니다. 그때 비로소 건축이 완성됩니다.” p330



주인공 뤼미에르가 비밀을 추적해 가는 과정들을 마지막까지 흥미롭다.
그리고 생계형 건축가가 사람의 이야기에 초점을 맞추며 건축가로서의 마음가짐이 변해 가는 과정 역시 매우 아름답다.

직업인으로서의 마음가짐은 어떠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그의 변화들은 무언가를 하는 이로서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전하는 다정한 나침반과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