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은 내 것이지만, 또 나만의 것이 아니기에
우리는 안간힘을 써서,
죽을힘을 다해서 살아남아야 한다.

어느 날 당신이 세상에 유일하게 남은 존재라면, 당신과 같은 사람이 존재하지 않는 세상에 남겨진다면?
코뿔이 잘려진 코뿔소... 그는 어쩌다 코뿔이 잘리게 되었을까?
왜 작은 펭귄과 함께 있는 것일까?
책의 표지는 서로 생육 환경이 다른 두 마리의 동물이 서로를 기대채 무언가 감정을 공유하는 듯하다.
어쩌다 두 동물은 함께하게 되었을까?
<긴긴밤>이라는 이 책은 문학동네 어린이 문학상 대상 수상작이다.
아름답고도 슬픈듯한 이 그림과 이야기를 ‘루리’ 작가님이 만드셨다.
이 이야기는 어쩌면 슬프고, 어쩌면 아름다운 이야기이다. 아니, 이렇게 단순한 감정으로 표현할 수 없는 이야기이다.
희망을 가졌다, 절망을 느끼고, 분노를 하다 다시 희망을 갖고 두려워하다 또 슬픔이 몰려오고 하지만 결국 희망하게 되는 이야기이다.
긴긴밤은 표지에 뿔이 잘린 흰 바위코뿔소 노든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이유를 알 수 없지만, 노든은 코끼리 고아원에서 자란다. 주위에 모두가 코끼리였기 때문에 자신도 코끼리일 것이라 믿으며 산다.
그러던 어느 날, 자신은 코끼리가 아닌 코뿔소라는 사실을 알게 되고 코끼리 고아원을 떠나기로 결심한다.
코끼리 고아원을 떠나는 날, 코끼리들은 노든에게 인사를 건넨다.
여기, 우리 앞에 훌륭한 한 마리의 코끼리가 있네. 하지만 그는 코뿔소이기도 하지.
훌륭한 코끼리가 되었으니, 이제 훌륭한 코뿔소가 되는 일만 남았군 그래.
p. 16
노든은 야생에서 사랑하는 아내를 만나고 딸을 낳고 행복한 삶을 산다. 그러나 삶은 늘 우리에게 친절하지 않다.
코뿔소의 뿔은 밀렵꾼들에게 코뿔소라는 동물보다 중요한 상품이다. 그들은 ‘뿔’을 얻기 위해, 노든의 아내와 딸을 죽인다.
그리고 혼자 남은 노든은 구조되어 동물원에 갇히게 된다.
노든과 같은 또 다른 코뿔소 앙가부를 만나게 되고, 그와 함께 탈출을 결심한다. 하지만 그에게는 또 절망이 찾아온다.
어떠한 사건으로 노든은 이제 세상에 유일하게 남은 코뿔소가 된다. 사육사들은 노든을 지키기 위해 그의 뿔을 자른다.
한편, 동물원에는 치쿠와 님보라는 펭귄이 있었는데, 그들은 누구도 돌보지 않은 알을 자신들이 품기로 결심한다.
그러던 어느 날, 전쟁이 들이닥쳤고 치크는 자신의 알을 들고 동물원을 도망친다.
이 소설은 노든의 이야기로 시작해서 그가 겪는 안타깝고 절망적인 운명을 서술한다.
그는 인간에게 분노하고 복수를 결심하지만 펭귄 치쿠와 그의 알과 함께 동행하게 되면서 어느 순간 새로운 생명을 지키는 것에 온 힘을 다한다.

p. 80 그리하여 나의 가장 첫 번째 기억은 새까만 밤하늘과 빛나는 별들과, 별들만큼이나 반짝이던 코가 뭉툭한 코뿔소의 눈이었다.
나는 태어나자마자 노든에게 살아남는 법에 대해 배웠다. 노든은 엄격했다. 알 바깥의 세상에서는 살기보다 죽기가 더 쉽다고 했다.
살아남는 게 그렇게 어려운 일인데도 내가 끝까지 살아남아야 하는 이유는 치쿠와 임보 때문이라고 했다.
p.81 노든은 자신이 살아 있다는 것을 확인이라도 하는 듯이 눈을 감고 긴 숨을 내쉬었다가 다시 말을 이어 나갔다.
“그런데 포기할 수가 없어. 왜냐면 그들 덕분에 살아남은 거잖아. 그들의 몫까지 살아야 하는 거잖아.
그러니까 안간힘을 써서, 죽을힘을 다해서 살아남아야 해.”
이름 없는 펭귄은 한 번도 보지 못한 윔보와 치쿠로 인해 생을 얻었다. 그리고 노든으로부터 살아남는 법을 배운다.
우리는 세상을 홀로 살아가는 존재이다. 그래서 삶은 홀로 가는 길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내가 홀로 살아갈 수 있게 되기 전.
알에서 태어난 아기 펭귄과 같이 우리는 부모로부터 생을 얻고, 부모, 가족, 선생님, 친구 그리고 사회로부터 살아남는 법을 배웠다.
우리는 혼자 태어나 혼자 살아갈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알에서 막 태어난 존재는 다른 이의 도움 없이 그저 죽음만을 앞두고 있을 뿐이다.
어른이 되어 자신의 삶을 살아내다 보면, 어느 순간 ‘나 혼자 살아낸 인생’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나 역시 그런 줄만 알았다.
아이를 낳고 엄마가 되어보니, 귀하고 소중한 내 아기는 혼자 먹을 수도, 혼자 잠을 잘 수도, 혼자 살아갈 수 없는 존재였다.
밤을 새워가며 젖을 먹이고, 기저귀를 갈아주고, 안아주고, 말과 노래를 들려주며 배밀이를 하게 되고, 걸음마를 시작하게 되고, 말을 하게 되어도
아이는 혼자 살아갈 수 없는 존재이다.
엄마가 되어서야 알게 되었다. 나는 한 사람 아니, 여러 사람의 운명 속에서 그들의 연대와 보살핌으로 살아남았다는 사실을...
이름 없는 펭귄은 그런 존재이다. 여러 삶이 연대하여 이루어진 존재이다.
우리는 홀로 외롭지만, 외롭지만은 않은 존재이다.
하지만 우리는 살아남았다.
세상에 마지막 남은 하나가 되었지만 복수를 할 수 없는 흰 바위코뿔소와 불운한 검은 점이 박힌 알에서
목숨을 빚지고 태어난 어린 펭귄이었지만,
우리는 긴긴밤을 넘어,
그렇게 살아남았다.
p.104

'삽질하는 힘을 키우는 중입니다(책리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소설집 <깊이에의 강요> 파트리크 쥐스킨트, 열린책들 : 타인의 평가에 휘둘리지 말것 (3) | 2024.12.02 |
---|---|
단편소설집 <대성당> 레이먼드 카버, 김연수 옮김, 문학동네 : 에피파니의 순간 (2) | 2024.11.27 |
<화이트홀> 카를로 로벨리, 쌤앤파커스 : 시간은 모두에게 동일하지 않다 (2) | 2024.11.25 |
이동진 평론가 추천 이달의 책 <세계를 움직인 열가지 프레임> 수바드라 다스, 장한아 옮김, 북하우스 : 권력의 프레임속에 살아가는 우리들 (5) | 2024.11.24 |
에세이 추천 <나는 읽고 쓰고 버린다> 손웅정, 난다 출판사 : 독서로 이룬 단단한 신념 (28) | 2024.11.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