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삽질하는 힘을 키우는 중입니다(책리뷰)

<H마트에서 울다> 미셀 자우너, 문학동네: 그리운 나의 엄마

by rallalawoman 2024. 8.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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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과 같은 마음이 내게도 있었다. '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부아가 나서 죽을 지경이다. 내가 생판 알지도 못하는 이 한국 노인에게 짜증이 난다. 이 여인은 이렇게 멀쩡하게 살아가고 있는데 우리 엄마는 그렇지 않단 사실에 화가 치밀어오른다. 마치 생면부지의 이 여인이 살아남은 것이 내가 엄마를 잃은 것과 무슨 연관이라도 있는 것처럼. 누군가는 우리 엄마 나이에도 자기 엄마를 곁에 둘 수 있다는 사실에 골이 난다.

📖모두가 고향의 한 조각을, 우리 자신의 한 조각을 찾고 있다. 우리가 주문하는 음식과 우리가 구입하는 재료에서 그걸 맛보고 싶어한다.

📖엄마는 다른 영역에서는 부모의 권위를 앞세웠지만 음식에 대해서만큼은 무척 관대했다. 내가 좋아하지 않으면 절대 억지로 먹게 하지 않았고, 내 몫의 절반만 먹고 남겨도 결코 접시를 다 비우라고 말하는 법이 없었다. 엄마는 음식은 즐기는 것이어야 하며 배가 부른데도 꾸역꾸역 밀어넣는 것만큼 미련한 짓도 없다고 생각했다. 엄마의 유일한 규칙은 뭐든지 적어도 한 번은 맛봐야 한다는 것이었다.

📖엄마! 엄마!

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엄마가 반복해서 외치던 그 말. 목구멍 깊은 데서 터져나오는 원초적인 한국식 흐느낌. 한국 영화와 연속극에서 듣던 바로 그 소리. 엄마가 자기 엄마와 동생을 위해 울면서 냈던 그 소리. 고통에 찬 비브라토로 시작해 점점 스타카토로 이어지다 나중에는 작은 돌기에 통통 부딪히며 떨어지듯이 끝나는 그 소리.

📖엄마의 재를 땅에 묻는 일은 나에게 중요했다. 꽃을 가져와 놓아둘 공간이 필요했다. 쓰러질 수 있는 땅이, 주저앉을 바닥이, 아무 철이고 와서 눈물을 흘릴 풀밭과 토양이 필요했다. 마치 은행이나 도서관에 찾아간 것처럼 진열장 앞에 똑바로 서 있어야 하는 곳이 아니라.

 

 

 

🖌나와 나의 엄마의 이야기가 아닌가 싶었다. 아낌없이 주는 나무이지만 자신의 삶 또한 아낌없이 사랑한 엄마.
그 엄마와 너무 다른 성격의 딸이지만, 엄마의 흔적들이 시간 곳곳에 베여있어 결국, 나를 이루던 사람이 엄마였다는 사실을 알게 된 딸. 우리 엄마와 나의 이야기였다.

자우너의 엄마가 타국에서 이방인으로 살면서 음식에 대한 진심어린 열정은 음식으로 나의 뿌리를 잊지 않으려는 경건한 삶의 의례와 같다.

나 역시 이방인으로 살아가고 있고, 자우너와 같이 이방인으로 살아가는 딸이 있다. 우리는 우리가 한국사람임을 잊지 않으려는 듯 더 열심히 한국 음식을 만들고 먹고 살아가고 있다. 자우너의 삶이 나의 삶과 너무도 많이 닮아있었다. 당신의 이야기가 나의 이야기라는 것이 위로가 되고 힘이 되었다.

미래에 내게 다가올 작별의 시간안에서 나는 어떤 애도를 하며 어떻게 시간을 통과해야 할지 그녀가 내게 다정하게 이야기해주어서 마음속에 작은 용기가 틔었다. 우리 딸에게도 꼭 읽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