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멈춘 순간,
어깨를 쫙 편 오만함… 살아 있다는 것이 제일이라는 것을 아는 생명
📖형의 상태가 급속도로, 이유를 알 수 없이 나빠지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어떻게든 도와볼 요량으로 달려갔을 때 형은 겁에 질려 있었다.
“신경과로 데려가세요.” 형의 주치의가 전화로 말했다. “지금 가세요. 진료 예약 같은 건 걱정 마시고. 차에 태워서, 지금!”
나는 형의 왼팔을 내 어깨에 둘러 부축하면서 택시가 오기를 기다렸다.
“그래서 패트릭.” 형이 속삭였다. “잘 지냈어?” 우리는 둘 다 웃음을 터뜨렸다.
📖하루가 끝난 후 86번가에서 지하철을 탄 나는 우물처럼 샘솟는 연민의 마음으로 동승자들을 둘러본다. 평범한 날이면 낯선 사람들을 힐끗 보며 그들에 관한 가장 근본적인 사실을 잊어버리기 일쑤다. 그들이 나만큼이나 실존적이고 승리하고 또 고통받았으며 나처럼 힘들고 풍요롭고 짧은 삶에 몰두해 있다는 사실을. 입원해 있는 톰을 방문한 후 집으로 가는 지하철을 타던 때를 기억한다. 누구라도 심술을 부리거나, 실수로 부딪힌 다른 승객에게 쏘아붙이면 그게 그렇게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편협하고 무지해 보였다. 우리 모두 그럴 때가 있는데도 말이다. 오늘 밤은 운이 좋다. 낯선 사람들의 피곤하거나 어떤 생각에 빠져 있는 얼굴들을 애정을 갖고 바라볼 수 있다.
📖나는 “어깨를 쫙 편 오만함… 살아 있다는 것이 제일이라는 것을 아는 생명”이라고 적는다. 이건 분명 과거의 무덤을 넘어 현재까지 이어지는 유일한 사실이다
📖디테일로 가득하고, 모순적이고, 가끔은 지루하고 가끔은 숨 막히게 아름다운 일상. 아무리 중차대한 순간이라 하더라도 아무리 기저에 깔린 신비로움이 숭고하다 할지라도 복잡한 세상은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돌아간다. 우리는 삶을 살아가야 하고, 삶은 우리를 내버려 두지 않는다.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은 우리의 일부가 된다. 비유적으로만 그런 것이 아니라 물리적으로도 그렇다. 그 사람이 우리의 내적인 모델에 흡수된다는 뜻이다. 뇌는 그 사람의 존재에 대한 예측을 중신으로 스스로를 재편성한다. 그런데 애인과 헤어지거나 부모님이 세상을 떠나면 그 갑작스러운 부재로 인해 항상성이 크게 깨진다. 칼릴 지브란 ’ 예언자‘에서 그것을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항상 사랑은 이별의 순간에야 자신의 깊이를 깨닫는다.“ 우리는 각자의 세계가 된다_데이비드이글먼 p.242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그 사람만이 아니라 그와의 관계를 사랑한다는 것이다. 그로 인해 탄생하는 나의 분인을 사랑한다는 것이다. '나는 당신과 함께 있을 때의 내가 가장 마음에 든다. 그런 나로 살 수 있게 해주는 당신을 사랑한다.'그렇다면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 일이 왜 그토록 고통스러운지도 이해할 수 있다. 그를 잃는다는 것은 그를 통해 생성된 나의 분인까지 잃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의 죽음으로 인해 그 사람만 가능했던 관계도 끝난다. 다시는 그를 볼 수 없다는 것은 다시는 그때의 나로 살아갈 수 없다는 뜻이다.'. 인생의 역사_신형철 p131
작가는 사랑하는 형을 잃었다. 삶의 커다란 조각이 떨어져 나갔다. 형의 죽음은 작가의 삶을 다른 곳으로 이끌었다. 그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속에서 사랑하는 형을 보낸 애도의 시간을 보낸다. 그곳에서 그는 10년이라는 시간동안 예술작품들 속에서 시간을 넘어선 위로를 받고, 동료들과의 우정 속에서 살아있는 것 자체의 의미를 발견한다.
작가의 회복되어 가는 과정을 함께 따라가면서 나도 그리고 당신도 눈물이 울컥하고 슬픔이 목구멍을 밀고 올라오는 순간들을 느꼈을 것이다. 우리가 인간으로 태어난 순간, 이별과 상실은 피할 수 없는 운명이 되었기에 누구도 이 명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사랑하는 이를 상실한 우리는 현실이라는 쳇바퀴 속에서 마음을 쓰다듬어줄 시간을 허락받지 못한다.
삶을 살아내야 하고, 일상으로 돌아가야 하는 슬픈 존재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상처가 진물이 나고, 세포가 새롭게 돋아나 딱딱한 딱지를 이루고, 그 딱지가 서서히 사라져 상처난 자리가 아물기까지의 긴 시간을 빼앗긴 채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작가는 상처가 아무는 과정을 천천히 그리고 오롯이 마주하며, 새 살이 돋는 과정을 목격했다. 그의 시간과 시선으로 우리는 빼앗긴 회복의 시간을 위로 받을 수 있었던 건 아닐까?
'그를 사랑했던 그 때의 내 모습을 잃는 것이다'라는 것이 우리에게 깊은 상실감을 느끼게 만든다. 내가 사랑했던 그 사람과의 시간, 그리고 그를 사랑하던 그때의 내 모습은 영원이 다시 돌아갈 수 없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음과 동시에 나를 잃은 것이다.
그렇기에 상실은 삶을 흔들고, 아프고, 고통스러운 것이다.
'나는 아프다.' 이 사실을 부정도 회피도 하지 않고, 오롯이 마주한 패트릭 브링리.
상실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하지 못했던 것을 그를 통해 우리는 회복의 순간을 경험할 수 있었기에 특별하고, 아름다운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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