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고통을 보는 이유는 다른 이의 아픔에 공감하기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연대를 통해 느슨한 공동체를 일시적으로나마 가동하여 비슷한 아픔을 막아내기 위해서이기도 하다.
<고통 구경하는 사회> 중에서

📖영상을 본 사람들은 사고 현장에서 서서 ’ 구경하는 눈‘을 간접 체험했다. 각자의 상황이 다양했으리라 추측하지만, 죽음을 구경하는 카메라가 이미지를 보는 사람까지 구경꾼으로 만들어버린다는 사실은 부정하기 어렵다. p25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는 평가 범위에는 시청자들의 관심과 행동, 세상의 움직임까지가 포함되기 때문이다. 이는 사람들이 보고도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면 결국 대규모 구경이 되어버릴 위험성이 생긴다는 이야기이도 하다. 29
📖우리가 고통을 보는 이유는 다른 이의 아픔에 공감하기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연대를 통해 느슨한 공동체를 일시적으로나마 가동하여 비슷한 아픔을 막아내기 위해서이기도 하다. 이 일이 왜 일어났는지 살펴보고, 누가 잘못을 저지른 것인지 알아내고, 구조적인 문제점을 파헤쳐 참사가 반복되지 않도록 감시하는 게 동료 시민의 역할이다. 우리의 시선이 어디에, 얼마나, 어느 정도의 섬세함으로 머물러야 하는지, 어느 방향으로 옮아가야 하는지까지가 이야기되어야 한다. 35
📖뉴스는 인간이 만들어내는 것이라 인간을 닮았다. 보이는 걸 보이는 대로 보다가 자칫하면 주류의 시각을 답습한다.
📖약자의 선행을 바라볼 때는 그 사람이 속한 집단이나 계층의 특성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한 개인의 독특한 선함의 질감을 놓치지 않도록, 악행을 바라볼 때는 개인의 악함으로는 다 포착되지 않는, 그가 그런 선택을 하기까지 영향을 미친 사회적 요인과 모순에 고루 책임을 묻고 있는지를 점검해야 한다. 그렇지 않는다면 우리는 자꾸만 약자의 일을 저 멀리 타자화하며, 나와 관련 없는 남의 일로 간단히 치부해 버리는 인지적 게으름에 빠지게 될지도 모른다. 136
📖자신의 고통을 대중 앞에 꺼내든 사람은 취약해진다. 사적인 감정은 스스로 처리하라는 나무람이나 이제 그만할 때가 되었다는 짐짓 이성적인 체하는 반응도 따라붙는다 그러나 그들이 자신의 트라우마를 반복 재생하면서까지 해내려는 일이 무엇인지 짚어본다면 이런 말들은 힘없는 잡음에 불과해진다.
상실과 슬픔, 우울과 기억의 혼돈 속에서 그들은 뒷이야기를 새로 쓰려고 한다. 같은 이름의 다음 고통을 막기 위해. 이들의 선한 의도는 언론이 좋아하는 영웅담의 소재가 되기도 하겠지만, 우리가 그보다 더 오랫동안 바라봐야 하는 건 그들이 나눠주고 이식해 준 기억 자체일지도 모른다. 제대로 슬퍼하려면 기억을 나누어야 하고, 필요한 만큼 충분히 오래 슬퍼하려면 기억을 되살려야 한다. 261
🖌* 재난 현장을 찍은 수많은 영상들이 실시간으로 퍼져간다. 여과 없이 현장을 생생히 전달하는 영상을 보면서 나는 한동안 잔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괴로워한 적이 있다. 이는 현장을 촬영한 영상을 보면서 결국 고통을 구경하는 자에 머무른 듯한 죄책감과 생사를 오고 가는 사건의 현장에서 물리적으로 떨어져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무력감을 느꼈다.
이 책은 우리가 고통을 소비에 머물지 말고, 우리 모두에게 그러한 일이 또 반복되지 않도록 ‘왜’그러한 일이 일어났는지, 앞으로 우리는 ‘무엇을’ 개선해야 하는지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잊지 않아야 함을 상기시켜 준다. 수많은 고통에 무감각해지지 않고, 사회적 구조의 문제로 인한 재해들은 기꺼이 함께 기억해 나가고 그 기억이 계속 우리 모두의 기억 속에 남아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는 우리가 되기를 누구보다 간절히 염원하는 언론인의 기록이다.
패턴화 된 뉴스 보도들 속에서 고정된 나의 스테레오 타입을 발견하면서 사회적 약자의 선행에 대한 날카로운 질문과 기후위기의 보도의 오류, 우리 사회의 확증편향과 같은 내밀한 문제점들을 자신의 사례와 보도의 사례를 통해 우리를 일깨워준다. 세상에 넘쳐나는 갈등과 혐오 속에서 길을 잃지 않기 위해 나의 생각을 점검할 수 있는 부끄럽고 슬프고 그럼에도 더 늦기 전에 알 수 있게 이야기해 주어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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