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삽질하는 힘을 키우는 중입니다(책리뷰)

<사나운 애착> 비비언 고닉, 글항아리 -엄마와 나 그 징글징글한 애증에 관하여

by rallalawoman 2024. 8.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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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나운 애착> 비비언 고닉, 글항아리


손 끝이 머무른 순간,  


📖유대인이 대다수 거주하는 건물인 이곳에서도 엄마는 엄마만의 부류에 속했다. 사회적 자아라는 외피와 남들이 모르는 자기 자신이라는 본질 사이에 넉넉한 공간이 있었던 엄마는, 그 안에서 당신을 자유롭게 표현했다. 상냥하면서도 냉소적이었고 예민하면서도 대범했으며 두루뭉술하게 넘어가면서도 꼬장꼬장했고, 가끔씩 스스로 정이 넘쳐서라고 생각하는 거칠고 심술맞은 면모를 보이기도 했다. 그런 모습은 사실 당신이 가장 두려워하던 약해지는 마음, 그것을 다잡았을 때 짐짓 내보이는 모습이었다.

📖요즘 사람들은 불행이 너무 생생해.”

엄마의 말에 나는 흠칫 놀랐지만 사뭇 즐겁기도 했다. 엄마가 진실을 말하거나 영리한 통찰을 하면 기분이 좋아진다. 그 즉시 엄마를 사랑할 수도 있을 것만 같다. “일단 그렇게 시작을 하는 거야, 엄마.” 나는 부드럽게 말한다. “먼저 불행을 솔직히 드러내고 나면 뭐든 해볼 수 있는 거잖아.”

📖늘 하던 대로 살다가 우리가 되어버렸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만다. 우린 놀라울 정도로 비슷하게 자기만의 세상에서 고립된 채 살아온 사람들, 평생 서로의 생활 반경에서 벗어나지 못해 닮아버린 두 여자다. 이런 순간엔 우리가 모녀라는 게 마치 외계인이 전달한 메모처럼 충격적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엄마 이야기야. 그때는 그랬다고. 뜻 있어서 한 말 아니야. 넌 당연히 잘 살았지. 그건 세상이 다 알아줘. 그렇게 성내지 마라. 세게 말하려던 것뿐이니까. 엄마가 잘못 말했다. 이제 너한테 어떻게 말해야 하는지 모르겠어.”

📖엄마가 침묵을 깬다. 이제 격한 감정이 거둬진 목소리, 그저 호기심에 대답을 바라는 초연한 목소리로 묻는다. “그러면 엄마랑 좀 멀리 떨어져 살지 그랬니? 내 인생에서 멀리 떠나버리지 그랬어. 내가 말릴 사람도 아니고.”

나는 방 안의 빛을 본다. 거리의 소음을 듣는다. 이 방에 반쯤 들어와 있고 반은 나가 있다.

“안 그럴 거 알아, 엄마.”

 

 



🖌* 비비언고닉의 자전적 에세이. 그녀의 엄마와 그녀는 사랑에 관하여 다른 가치관을 가지고 살아간다. 그러면서 두 모녀는 서로에게 가장 좋은 지지자가 되어 주기도 하고, 때로는 가장 매서운 적이 되기도 한다. 한 사람의 육체를 찢고 태어난 관계이지만 둘은 같을 수 없다. 서로 다른 심장을 가지고 있고 다른 감정으로 살아가기 때문이다. 모녀관계가 복잡 미묘한 이유가 바로 이러한 이유인 듯하다.

나와 나의 어머니는 극과 극에 살고 있는 사람과 같다. 취향이며 가치관이며 심지어 외모까지도 많이 다르다. 내가 어린 시절 엄마를 이해하지 못했던 순간들이 성장하면 이해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나또한 엄마가 된 지금에도 이해되지 않는 부분들이 많다.

비비언 고닉과 그녀의 어머니의 대화에서 “이제 너한테 어떻게 말해야 하는지 모르겠어.”라고 말하는 그녀의 어머니의 말은 내가 나의 어머니에게 가장 많이 듣는 말 중 하나이다. 다시 태어나도 모를 것이다. 그녀의 어머니도 나의 어머니도.

너무 소중하고 사랑하는 존재이지만 어느 순간에는 세상에서 가장 멀리 있는 사람과 같은 관계. 이 책의 제목이 ‘사나운 애착’일 수 밖에 없었다는 것에 감탄이 절로 나온다. 이보다 적절한 제목이 있을까 싶다. 같은 여성으로서의 어머니와 나, 그리고 모녀 관계로서의 어머니와 나라는 관계의 복잡성은 그 어떤 단어로도 정의될 수 없을 것이다. 얽히고 설켜있는 이 관계를 있는 그대로 인정할 때 비로소 우리가 될 수 있다는 사실에 고개를 끄덕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