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향수-어느 살인자의 이야기
작가:파트리크 쥐스킨트
출판사: 열린책들
아무 생각 없이 책을 읽고 싶을 때는 아주 부담 없는 두께의 <좀머 씨 이야기>를 읽는다. 서술자가 주인공을 관찰하는 시점이 무심한 듯하고, 간결하다. 그래서, 결국 주인공인 좀머 씨의 행동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자꾸 파고들게 만든다.
<향수>는 <좀머 씨 이야기>보다 상세한 묘사와 사건이 눈 앞에 펼쳐지고 있는 듯한 시각적 묘사가 돋보인다. 장면을 상상할수록 '그는 어떤 존재인가?'를 파고들게 만든다. 왜 자꾸 파고드는 것인가 나는....
작품의 의미를 찾기 위해 인터넷을 찾고 또 찾았다.
많은 글들이 있었으나, 결국 명확한 해석을 찾지 못하였다.
김영하 작가의 <살인자의 기억법>을 읽을 때도 그랬다. 무엇을 의도했는지를 찾기 위해 책을 3번을 연속 읽고, 또 읽고 인터넷을 찾아보고, 김영하 작가님의 팟캐스트까지 찾아들었다. 찾으면 찾을수록 혼란스럽기만 했다.
작품의 명확한 해석과 의미를 찾고자 하는 것 자체가 어쩌면 어리석은 짓이겠구나 싶었다.
결국, 작가는 독자 스스로 의미를 찾게 하는 것을 원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나는 결국, 소설을 읽을 때 문장에서 나 스스로 생각한 의미들을 기억에서 사라지기 전에 적기 시작했다.
나의 책 리뷰는 이러한 이유로 시작되었다. 다른 사람들은 어떤 의미를 발견하였는지, 어떤 새로운 관점으로 작품을 이해했는지 궁금하다. 혼자만의 서평은 많은 생각을 할 수 있으나, 결국 '나'는 나의 생각의 한계를 누구보다 잘 알기에 사람들과 이야기하고 싶었다.
냄새에 관한 천재적인 능력을 타고난 주인공 그르누이가 향기로 세상을 지배하게 되는 과정을 그린 <향수>
그 자신은 아무 냄새도 없는 아이가 뻔뻔스럽게도 남의 냄새를 맡고 있다니! 냄새로 남의 존재를 알아채다니!
가장 부드러운 감정, 가작 추악한 생각까지 이 집요한 작은 코앞에서는 완전히 드러나 버리고 말았다.
이제 그는 자기 쪽에서 뭔가 맡고 싶지 않은 악취를 맡은 것처럼 코를 찡그렸다.
자신의 육체가 관련된 문제였다.
적개심 가득한 짐승 같았다.
역겨운 쇳소리를 내며 소리를 질러대자 테리에는 혈관 속의 피가 얼어붙는 듯했다. 이 악귀는 멀리 사라져야 한다. P.30~31
태어나던 순간의 울음소리 나 결국은 어머니를 단두대로 보내게 된, 자신의 존재를 알아 달라고 생선 좌판 밑에서 질러 댄 그 울음소리는 동정이나 사랑을 갈구하는 본능적 울부짖음이 아니었다. 그것은 오히려 충분한 생각과 심사숙고 끝에 나온 비명이었다. 그렇게 소리를 질러 댐으로써 그는 오히려 사랑을 <거부하고> 생명을 <선택한> 셈이었다.
그가 생명을 선택한 것은 오로지 반항심과 사악함 때문이었다. P.36
진드기는 고집과 집념으로 몸을 웅크린 채 살아남는다. 짐승의 피가 우연히 나무 바로 밑에 다가올 천재일우의 그 기회를 노리면서 말이다. 그 기회가 오면 비로소 그는 웅크렸던 몸을 펴고 나무에서 떨어진다. 그리고는 그 낯선 고깃덩어리에 달려들어 할퀴고 빨고 깨물고...... 그르누이는 바로 그 진드기 같은 아이였다. P. 37
그르누이는 그 냄새들을 통해 시장을 전부 다 본 것이나 다름없었다. 냄새를 통해 보는 일이 가능하다면 말이다. 더욱이 그는 다른 사람들이 눈으로 볼 수 있는 것보다 더 세세한 것들까지 냄새로 알 수가 있었다.P 57
그는 아주 탐욕스러웠다. 그의 냄새 사냥의 목적은 이 세상에서 냄새라고 부를 수 있는 모든 것을 소박하게 있는 그대로 소유하는 것이었다. 단 한 가지 조건은 오로지 그것들이 새로운 냄새여야 한다는 점이었다. P.60
자신이 더 이상은 여기서 떠나지 않으리라는 사실을 그르누이는 감지하고 있었다. 진드기가 피 냄새를 맡은 것이다. 수년 동안 몸을 웅크린 채 조용히 그런 날이 오기를 기다려 왔다. 좋든 싫든 그는 일단 나무에서 떨어졌다. P 108
자신이 만든 증류액의 향기로 온 세상을 가득 채울 수 있는 그런 커다란 알람빅이 되려는 것, 그것이 바로 그르누이가 꿈꾸는 소망이었다. P150
안개는 어떤 냄새 덩어리였다. 그르누이는 그게 무슨 냄새인지 알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그르누이 자신의 냄새였던 것이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그것이 <자신의> 냄새라는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냄새를 맡을 수가 없다는 점이었다. 완전히 자기 자신의 냄새에 파묻혀 있는데도 어떤 방법으로도 그 냄새를 맡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 사실을 분명히 깨닫자 그는 몸에 불이라도 붙은 것처럼 아주 무섭게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p205
그가 만들려는 것은 바로 인간의 냄새였다. 그는 자신에게 결핍되어 있는 인간의 냄새를 만들 계획이었다. p226
그 냄새를 맡은 사람은 누구나 다 그 냄새의 주인을 마음속 깊이 좋아할 수밖에 없는 천사의 냄새를 만들자. p235
그르누이는 전지전능한 냄새의 신이 되고 싶었다. 물론 현실 세계에서 진짜 사람들을 다스리는 신 말이다. 그는 자신이 그럴 능력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는 자신이 그럴 능력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p236
그가 원하는 것은 <특별한> 사람들, 즉 아주 드물지만 사람들에게 사랑을 불러일으키는 그런 사람들의 냄새였다. 그 사람들이 바로 그의 제물이었다. p284
서 있는 그루누이의 얼굴에 미소가 떠올랐다. 그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눈에는 세상에서 가장 순수하고, 가장 사랑스럽고, 가장 매력적이며, 또한 가장 유혹적인 미소처럼 보였다. p358
장 바티스트 그르누이, 세상에서 가장 악취가 심한 곳에서 냄새도 없이 태어난 그가, 쓰레기와 배설물, 그리고 부패 속에서 성장한 그가, 따뜻한 인간적 영혼도 없이 오로지 반항심과 역겨움의 힘으로 살아가고 있는 그가, 작은 키에 구부정한 모습, 절름발이에 추한 얼굴로 보기만 해도 도망치고 싶어 지는 그가, 외모와 마찬가지로 내면세계 역시 괴물인 그가 세상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는 데 성공한 것이다. p358
바로 이 순간에 그의 내면에서 인간에 대한 모든 역겨움이 되살아나 승리를 철저하게 무너뜨려 버렸다. 왜냐하면 그 자신은 그 향기를 사랑하기는커녕 증오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는 갑자기, 자신은 사랑이 아니라 언제나 증오 속에서만 만족을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증오하고 증오받는 것에서. p360
악귀, 진드기 같은 아이로 설명되는 그르누이의 출생의 배경으로 시작해서, 죽음으로 마무리되는 이 이야기는 그의 삶을 통째로 엿본 것 같은 불편한 감정을 느끼게 한다.
냄새에 천재적인 그가 정작 자신은 체취를 가지지 않아 냄새에 집착을 하고, 그로 인해 수많은 살인을 저지른다. 죽음을 선택하는 순간 역시 냄새로 인한 죽음이 되는 기이한 설정에 신기하게 매료되고, 그의 감정이 이해된다는 것에 나 자신도 의문이다.
모든 소설은 누구의 관점으로 서술하느냐에 따라 이야기의 분위기와 의도가 바뀐다.
우리의 삶 역시 마찬가지이다. 내 관점으로 이야기하는 것과 타인의 의해 서술되는 이야기가 다르다는 것은 너무나도 자명한 사실이다.
그르누이를 타인의 관점에서 보았을 때, 그는 태생이 악마였다.
악마적 인물이라는 전제로 그르누이는, 냄새 즉, 악마가 가질 수 없는 사랑이라는 가치에 집착하고, 사랑을 얻기 위해 탐욕스럽게 인간을 해치는 인물이다. 그러나 악은 사랑의 가치를 가지지 않은 무취의 존재이기에, 냄새를 갖는 순간 그 존재는 이미 본질이 훼손된 존재가 된다.
그르누이는 냄새로 사랑을 받고 싶었으나, 결국 그 냄새는 자신의 것이 아니었고 자신의 본질은 무취의 악마적 인물이었기에 결국 사랑으로는 자신을 만족시킬 수 없었다. 그는 증오와 악에서만 존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반면, 태어난 순간부터 한 번도 사랑을 받아보지 못한 축복받지 못한 삶을 살고 있는 인물의 이야기라 생각해보았다.
모두에게 저주받고 존재 자체가 거부되는 인간이라면, 인간의 본질인 '존재'에 대해 인정받고 싶었을 것이다.
'냄새' 즉, 인간으로서 존엄성을 가지고 싶은 욕망을 비뚤어진 방법으로 표출한 것이다. 그르누이는 사랑을 갈망했지만, 사랑을 받아 본적도 사랑을 해본 적도 없다. 결국 사랑이 무엇인지 모르고 막연하게 갈망했을 것이고, 스스로 존재할 수 없었기에 존재의 의미를 타인으로부터 찾으려 했을 것이다.
내가 원했던 사랑을 받는 데 성공한 순간, 그 사랑은 그르누이 자신을 사랑한 것이 아닌, 타인의 삶을 훔쳐 낸 결과물이었고, 그는 자신이 존재가치를 경멸하게 되었을 것이다. 스스로 존재하지 못하는 인간이었기 때문이다.
태생적 악마이든, 존재가치를 상실한 인간이든 그르누이의 감정을 이해할 수 있다는 것에 혼란스러웠다.
내 안의 또 다른 자아가 있는 건 아닌가? 아니면, 나는 모든 인물과 상황을 이해할 만큼 관용의 태도를 지닌 건가?
작가의 필력에 저절로 납득되는 건 아닌가?
결론은 <향수- 어느 살인자의 이야기>는 끊임없이 생각하게 만드는 소설이다.
정신없이 흥미진진한 이야기에 매료되어 빨려 들어가다 보면, 정신을 차려야 하는 순간들이 온다.
그 순간을 놓치면 나 또한 그르누이가 만든 향수의 환각에 빠질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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