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그림책에 마음을 묻다
작가: 최혜진
출판사: 북라이프
'그림책이 건네는 다정한 위로'
그녀의 책을 처음 접하게 된 것은 우연히 리디북스에서 발견하게 된, <유럽의 그림책 작가들에게 묻다>라는 책이었다.
그 책을 읽으면서, 느낀 수많은 영감들은 요르단이라는 낯설고 먼 땅에서 아이를 키우는 엄마이자, 나 자신을 들여다보느라 고민이 많았던 내게 가장 큰 기쁨이었다.
그 책이 내게 준 기쁨에 대해서는 말로 표현할 수가 없었다.
그녀의 글을 모두 찾아서 읽기 시작했고, 한국에 있는 소중한 친구에게 선물을 보내기도 하였다.
<그림책에 마음을 묻다>는 내가 그녀의 작품들을 찾으며, 만나게 된 책이다.
표지부터 정말 심플하다. 햇살이 들어오는 창가에 비추는 그림자, 그리고 짧은 글귀 ' 그림책이 건네는 다정한 위로'
내 마음의 그림자를 들여다 보고, 위로 해주는 책이었다.
"아이들 입장에서 한번 생각해봅시다. 어느 날 갑자기 낯설고 거대하고 복잡한 세상에 도착했습니다.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새로 배워야 할 대상이죠. 아이들 마음은 불안과 질문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러한 내면이 성장하기 위해서는 불안과 질문에 답해줄 수 있는 이야기, 그러니까 문학이 필요합니다. 세상에 대해 안심하도록, 그래서 성장할 용기를 내도록 말이죠."
프랑스 아동문학 평론가 소피 반 더 린덴의 인터뷰 본문 8p.
이 인터뷰가 그녀가 그림책을 독자들에게 처방하게 된 순간이었다고 한다.
불안을 다독여주고 질문에 답해줄수 있는 이야기가 그림채 안에 있다면 비단 아이들만 읽어야 할 이유는 없다고, 누군가의 내면이 흔들리고 있다면 그 빈틈으로 분명 꼭 맞는 그림책 한 권이 가닿으리라는 믿음으로 '그림책 처방'을 쓰기 시작했다고 한다.
잡지사 에디터 출신인 그녀는 오랜 시간 많은 사람들을 만나며, 질문하고 그 답을 찾는 것 그리고 그것을 많은 이들에게 전달하는 것에 대해 누구보다 노련하며, 유연한 것 같다. 그래서 타인을 이해하는 깊이가 깊고 다정하다. 그녀의 글에는 섬세함과 조심스러움, 그리고 겸손함이 느껴진다. 마치 나를 마주 보고 앉아 내 이야기를 듣고, 소곤소곤 위로해주듯 말이다.
우리 삶에 과정 속에서 겪게 되는 고민과 불안감들을 주제별로 다루어, 그 마음을 토닥여줄 그림책을 추천해준다.
'SNS에서 박탈감을 느낍니다','떠밀리듯 사는 것 같습니다'와 같은 우리 모두의 모습에 대한 주제들이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그림책의 사연은 '옛 연인에게 미련이 남아요'라는 고민이었다. 이 고민에 작가가 처방해 준 책은 샤를로트 문드리크 글, 올리비에 탈레크 그림의 <무릎 딱지>였다.
<무릎 딱지>의 주인공 '나'의 상처는 엄마의 상실에 기인합니다. 책은 이런 문장으로 시작합니다.
엄마가 오늘 아침에 죽었다.
사실은 어젯밤이다.
아빠가 그렇게 말했다.
하지만 난 밤새 자고 있었으니까
그동안 달라진 건 없다.
나한테 엄마는 오늘 아침에 죽은 거다.
엄마의 죽음이라는, 아이들 입장에서는 가장 커다란 공포일 이 소재를 다루는 그림책이 드물기도 하지만 그걸 차치하고 봐도<무릎 딱지> 는 몹시 대범합니다... 아이들 책이라고 감추지도 더하지도 않고 생의 속성을 온전히 담아냅니다. 어린이를 동등한 인격체로 존중하는 태도를 독자가 충분히 느낄 수 있을 정도입니다.
혼자 슬픔을 견뎌내기 위해 아이는 모든 것을 닫아버립니다. 엄마 냄새가 새어나가지 않도록 집 안의 창문들을 꼭꼭 닫고, 자신 안에 남아 있는 엄마 목소리가 새어 나가지 않도록 귀를 막고 입을 다뭅니다.
그러던 어느 날, 자신의 몸이 조금이라도 아프면 마음 안에서 엄마 목소리가 들려온다는 걸 알게 됩니다. 아이는 마당에서 넘어져 무릎에 생긴 딱지를 손톱 끝으로 긁어서 뜯어내기 시작합니다. 아픈 건 싫지만 그렇게 하면 엄마 목소리가 또 들려오니까 다시 상처를 내서 피를 냅니다. 그렇게 해서라도 엄마를 기억하려 합니다.
본문 226p.
나의 어릴 적 나는, '엄마 아빠가 나보다 먼저 죽으면 나는 어떡하지? 엄마 아빠 없는 세상은 상상조차 할 수도 없어. 나는 오래 살지 않을 거야, 엄마 아빠의 죽음을 지켜보지 않을 거야'라고 생각했었다.
엄마 아빠가 내 세상의 전부였고, 제일 사랑하는 존재였고, 내가 살아있는 이유였다.
어린 시절의 나는 아직 내게 일어나지 않은 상실의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다.
그때부터 나는 죽음의 의미를 생각했었다. 성인이 되었고, 결혼을 하여 가정을 일구고,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예쁜 딸을 낳고 나서, 나의 죽음으로 인한 가족들의 상실을 상상한다.
'내가 어느 날 갑자기 죽게 되면, 우리 딸은 누가 돌봐주지? 내 남편은 얼마나 슬퍼할까?'
일어나지 않을 일들을 상상하는 것은 불필요한 일이라 말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나는 소중한 이를 상실하는 순간의 고통을 겪어보았다. 막연한 죽음이라는 주제가 내 삶에도 어김없이 쓰일 것이다. 그것을 부정할 수는 없다. 그러기에 나는 지금 살아 있는 이 순간을 감사하고 또 감사하며 산다.
어린아이의 엄마의 죽음을 다룬 이 그림책이 내 마음 같았다.
아이에게 세상 좋은 것만 보여주고, 주고 싶고, 들려주고 싶은 것이 부모의 마음이다. 하지만 세상은 좋은 것만 존재하지 않는다. 아이는 성장하며 죽음 혹은 상실, 좌절 등 많은 일들을 겪으며 자랄 것이다.
그 모든 과정에 아이가 갑작스러운 상황에 부딪혀 깊은 골짜기 빠져나올지, 안전 방지턱처럼 잠깐 지나가는 굴곡이 될지 알 수 없다. 하지만, 나는 내 아이가 세상의 기쁨, 슬픔, 감사, 좌절, 성취 등 신이 우리에게 주신 모든 감정과 인생의 순간들을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으로 성장하길 원한다.
이 책을 읽고, 나는 내 아이에게 <무릎 딱지>를 꼭 읽어주고 싶어 졌다.
이 책은 '나'가 상실을 겪고 우울의 단계에서 애도의 단계로 건너가는 과정을 담은 이야기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할머니는 아이의 가슴 위에 손을 올려주며 "여기, 쏙 들어간 데 있지? 엄마는 바로 여기에 있어. 엄마는 절대로 여길 떠나지 않아"라고 말합니다. 할머니의 말을 듣고 아이는 온 힘을 다해 달립니다. 심장이 쿵쿵 뛰어서 숨 쉬는 게 아프게 느껴질 때까지...
엄마를 심장에 묻은 아이는 천천히 애도를 마치고 성장의 단계로 나아갑니다. 무릎엔 새살이 돋습니다. 알아차리지 못한 사이 딱지가 사라진 것을 발견한 아이는 울고 싶지만 울지 않기로 합니다.
누군가는 동의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저는 상처가 사람을 성장시킨다고 믿는 편입니다. 상처를 통해 겪는 고통의 깊이만큼 성장의 여지도 늘어난다고 생각합니다. 의식의 성장은, 특히 자신에 대한 의식의 성장은 스스로 파헤쳐보는 고통스러운 과정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어쩔 수 없이 피 흘리는 자신을 들여다보게 만드는데, 이 들여다봄의 고통이 의식을 얼마간 성장시키는 거죠.
상실은 상처일 테지만 상처를 통해서만 우리는 마침내 다른 삶을 시작할 수 있습니다.
본문 230~231p
고통의 시간을 지나온 사람은 그 고통이 지금 내가 서 있는 이 순간까지 어떤 의미였나를 생각할 수 있다.
고통스러웠기에 모두 잊어버리고 싶을 수도 있지만, 잊히지 않을 만큼 힘든 기억일 수도 있다.
그 순간들의 과정이 결국 나를 성장시킨다는 말은 결국 우리가 인정할 수밖에 없는 진리이지 않을까.
작가는 상실의 고통에서 어려운 사연에, <무릎 딱지> 이야기를 들려주며 결국 받아들일 수밖에 없고, 받아들였을 때 또 다른 삶을 시작할 수 있다는 것을 채근하지 않고, 이야기해준다.
어른도 때로는 아이처럼 두렵고, 슬프고 힘들다.
낯선 환경, 내 마음을 몰라주는 사람들, 애를 써도 바뀌지 않는 상황들..... 내 의지와 상관없이 나를 세상 밖으로 밀쳐내고 있는 것 같은 소외감.
우리는 때로는 어른 아이가 된다. 어린 시절 엄마가 안아주며 토닥여줬던 그때처럼, 그림책이 내 마음을 토닥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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