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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땅에 헤딩하는 즐거움(에세이)

네스프레소 커피머신 : 내 마음 속 크레마

by rallalawoman 2020. 9.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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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림을 하는 주부로서 많은 주방 가전들을 사용하게 된다.  그 중에서도 주방 소형 가전중에 유일하게 나를 위한 기기. 네스프레소 커피머신

 

주방 가전이라는 것이 살림에 도움이 되는 것들임에 부인하지 않는다. 

다만, 그것들의 용도는 음식을 만들기 위해 시간을 단축하는 것이나, 혹은 음식을 제조하는 용도 등 음식을 제조하기 위한 본연의 역할들이 있다.

이 기기들은 나만을 위한 것보다는 가족들을 위하고, 우리 모두를 위한 편리한 기기들이다.

 

네스프레소 커피머신 역시, 커피를 제조하는 역할을 지닌다.

여기서, 한끗차이의 다른 의미가 있다면, 커피머신은 오롯이 내 영혼의 평화와 휴식을 위해 존재한다는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커피 캡슐을 고르고, 기분에 따라 아메리카노, 카페라떼, 카푸치노, 아이스 커피 등을 만들는 모든 과정들이 내게 즐거움 그 자체이다.

 

 

에스프레소가 내려질 때의 모터 소리는 마치 예전 자판기 커피의 버튼을 누르고 커피가 나오는 소리와 함께 향기가 퍼지면, 빨리 마시고 싶고, 빨리 꺼내고 싶어서 설레였던 그 순간들 같다.

 

뜨거운 물위에 미끄러지듯이 퍼지는 커피 크레마를 보고 있으면, 그 짧은 몇 초의 시간동안 아무 생각나지 않고, 오롯이 크레마가 만들어내는 결들을 바라보게 된다. 곱고 고운 크림 빛 갈색의 결들이 촘촘히 밀려 캬라멜 빛 도톰한 크레마가 완성되는 순간. 분주했던 아침 시간을 보상 받는 것 같은 희열을 느낀다. 

 

개인적인 취향으로 고소하고 균형감있는 커피의 맛을 좋아한다. 신맛이 나는 커피는 피하는 편이다.

네스프레소 커피 캡슐 중 가장 좋아하는 캡슐은, 이스피라치오네 베네치아와 같은 시리즈인 이스피라치오네 리반토이다.

이 두 캡슐로 정착하기 전까지 많은 캡슐들을 시도하며, 시행착오를 많이 겪었었다.

 

유독 피곤하고, 진한 향의 커피를 원할때는 향이 풍부한 이스피라치오네 베네치아.

속이 아프거나, 가벼운 커피의 향을 원할때는 부드럽고 고소한 이스피라치오네 리반토.

 

영롱한 크레마는 꼭 노을 같아서, 매일 매일 한순간도 같은 모습을 한 적이 없다. 그래서 더욱 매력있다.

오늘의 크레마는 어제의 크레마와 같지 않고, 내일의 크레마와도 다르다.

그래서 지금 바라보는 이 크레마를 바라보며 매일 새롭게 감동한다. 

 

20대 초반 바리스타로 2년간 일한 적이 있었다. 그 때 아주 호되게 커피를 배웠었다.

원두가 어쩌고 저쩌구를 배우기보다, 커피를 잘 만드는 것이 더 중요했을 때이다.  

매일 나의 탬핑의 강도와 그로 인한 크레마의 속도 그리고 크레마의 색과 두께와 향, 맛.

이것이 매일 매일 연습하고 또 연습해야 하는 과정이었다.

 

크레마를 자세히 살펴보아야 하고 맛을 보아야 하는 일들이 내겐 중요한 일들이었다.

꼭 내 맘 같았다. 매일 향과 크레마의 결이 달랐다. 

내 마음의 상태에 따라 달콤하기도, 씁쓸하기도, 신맛이 나기도 했다.

 

언제나 한결같은 커피를 만드는 것이 장인이나, 나는 내마음의 장인이 아직 되지 못했고, 크레마의 장인도 되지 못했었다. 그래서 오래 깊이 들여다보았다.

 

결마다 다른 크레마를 바라 보고 있노라면, 단 하루도 같은 얼굴을 보여준 적이 없는 노을이 생각난다.

그래서, 오늘 본 노을과 크레마는 다시 내가 만날 수 없는 모습인 것을 알기에 그 순간이 특별하다.

내 마음도 그러하다.

오늘은 내 마음과 어제와 내일의 내 마음은 온전히 같은 순간이 없다. 

그래서, 크레마를 보듯, 노을을 보듯, 내 마음을 들여다 본다.

 

 

 

네스프레소 커피머신 에센자 미니